정명석 총재 설교 – 현재 할 일은 ‘지금’ 해라 ‘지금 주와 같이’다 / 전도서 3장 1-8절

정명석 총재 목사 주일 설교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현재 할 일은 지금 해라. 지금 주와 같이다.’라는 주제로 말씀하겠습니다.

현재에 할 일은 ‘현재’에 하는 것이고, 미래에 할 일은 ‘미래’에 가서 하는 것입니다. 현재에 못 한 것은 ‘미래’에 가서 할 수 없습니다. 현재에 못 한 일을 미래에 가서 하더라도 이미 시간이 지나고 때가 지났으니 해도 효과가 없습니다.
현재의 것은 ‘현재’에 해야 미래에 가서도 그로 인해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농부가 현재 ‘씨’를 뿌려야 하는데 안 뿌리면, 미래에는 ‘곡식’을 얻을 수 없는 격입니다.

과거는 ‘현재’를 낳고, 현재는 ‘미래’를 낳습니다. 고로 현재의 것은 ‘현재’에 해야 현재도 잘되고, 미래에 가서도 얻을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역사는 ‘때’에 맞춰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때’에 맞춰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준비됐든, 준비되지 않았든 꼭 ‘때’에 맞춰 행하십니다. 계절을 보세요. 인간을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때가 되면, 바로 ‘계절의 옷’을 갈아입습니다. 인간도 ‘그 때’에 따라서 행해야 순리로 살게 됩니다. 비행기도, 버스도, 기차도 다 ‘때’가 있습니다. 그 때와 시간에 맞춰 타야 목적지까지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도 그러합니다. 그래서 제때 제 시간에 해야 합니다. 지나면 ‘상황’도 바뀌기 때문입니다.
때에 맞춰 하면 ‘상황’이 안 바뀌어서 잘해집니다. 똑같은 바닷물이라도 여름철에는 들어가서 수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더운 때’가 지나 겨울철이 되면 상황이 바뀌어서 바닷물이 얼음물같이 차가워져 들어갈 수 없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물건 값’이 올라가듯, 때가 지나면 자꾸 ‘상황’이 바뀌게 됩니다. 고로 때가 되면, 그때 빨리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상황’이 뒤바뀌지 않아서 쉽게 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빠른 구름’을 타고 행하십니다. 곧 독수리같이, 치타같이 빠른 자를 타고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역사를 제때에 맞춰 이루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같은 거리를 놓고도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 편히 걸어서 목적지까지 가는 방법이 있고,
힘들지만 뛰어서 빨리 가는 방법이 있고,  돈이 들어도 차를 타고 더 빨리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천천히 가면, 목적지에 도착하는 시간이 그만큼 늦어지고 늦게 얻습니다. 빨리 가면,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여 빨리 얻고 누리게 됩니다. 천천히 가서 늦게 도착하여 늦게 얻느냐, 빨리 가서 빨리 도착하여 빨리 얻고 누리느냐, 이것은 ‘얼마나 제때 빨리 행하느냐’에 따라서 좌우됩니다. 편하게 가더라도 늦게 가면, 얻고 누릴 시간이 없습니다. 고생돼도 뛰고 달려서 빨리 가면, 얻고 누릴 시간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편한 방법’만 택해서 삽니다. 편하니까 좋지요. 그러나 편한 것이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편한 것이 ‘얻는 방법’은 아닙니다. 그런 사고를 가지고 있으니, 신앙생활도 편하게만 합니다. 그렇게 천천히 걸어가면서 신앙을 하니, 해 질 때나 얻게 되어, 먹고 쓰고 누릴 시간이 없습니다.

목적한 거리를 놓고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경사가 완만한 길로 편히 가는 방법이 있고,  계단으로 가는 방법이 있고,  힘들지만 경사가 심한 길로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경사가 심한 길은 험하지만, 가는 거리는 그만큼 짧습니다. 그러나 정신을 몰두해서 전심을 다해 가면, 먼 거리도 ‘짧은 시간’에 가게 됩니다. 계단으로 가는 자는 ‘보통 사람’이고, 경사가 완만한 길로 가는 자는 ‘고생 안 하고 느리게 하는 자’이고, 경사가 급한 길로 가는 자는 ‘고생돼도 전심으로 하는 자’입니다.

고생돼도 전심으로 하는 자가 가장 빨리 얻고, 가장 많이 얻고 누리게 됩니다. 이것은 절대 벗어날 수 없는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각자 얼마나 속력을 내고 자기 인생을 사느냐에 따라서 육과 혼과 영의 운명이 좌우됩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구약 4000년은 ‘마차’로 가는 역사와 같고, 신약 2000년은 ‘자동차’로 가는 역사와 같고, 이시대 1000년은 ‘비행기’로 가는 역사와 같습니다. 이시대는 삼위일체와 한 몸 되어 시간을 최고로 단축해서 뛰니, 하나님의 뜻도 빨리 이루고, 육적으로도 영적으로도 최고로 얻고, 빨리 얻는 때입니다.

 

<2015년 12월 20일 정명석 목사의 주일말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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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석 총재 설교 – 삼위가 걱정하시지 않게 하려면, 끝까지 해야 된다 끝까지 연단받고, 이기고 얻어라 / 시편 23편 5절

정명석 총재 목사 수요 설교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걱정하시지 않게 하냐고 물었을 때, 성령님은 “끝까지 해야 된다.” 하셨습니다.

시작할 때 어려움도 있고, 과정 중에 환난과 핍박과 어려움도 있지만 결국 ‘정말로 끝까지 가겠다.’ 마음먹고 행한다면, 근본적으로는 걱정이 안 됩니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가장 크게 걱정하시는 자들이 있으니, 끝까지 못 하는 자, 중도에 포기하는 자입니다.

처음에 아무리 잘하던 자도 중간에 마음이 변하여 주를 등지고 나가기도 하고, 열심히 하던 자도 나가기도 합니다.

혹은 하늘과 형제를 오해하고 나가기도 하고, 자기중심으로 생각하다가 나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환난과 핍박과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성삼위와 주를 붙들고 행하며 이긴다면, 그는 ‘삼위일체가 걱정하시지 않게 하는 자’입니다.

육상 경기도 끝까지 가 보기 전에는  <승리자>를 확신할 수 없습니다.  끝까지 가서 ‘결승선’을 넘은 자가 <승리자>가 됩니다. 끝까지 해야 ‘승리를 확신’합니다. 끝까지 해야 ‘의문’도 풀리고 ‘오해’도 풀립니다. 끝까지 해야 ‘그동안 손해 간 것들’을 보상받고 얻게 됩니다. 끝까지 해야 ‘그동안의 한’을 풉니다.

끝까지 해야 하나님이 왜 그렇게 하셨는지 ‘사연과 뜻’도 알게 됩니다.

<집>도 끝까지 지어야 완성하여 살 수 있습니다. <수고의 대가>도 끝까지 해야 줍니다. <하루 품삯>도 하루 종일 일하고 끝에 가야 줍니다. 아무리 <멋진 글>이라도 끝까지 마무리해야 빛이 납니다. <휴거>도 ‘끝까지 하는 자’가 완성합니다.

<처음>에 다 주고 <과정 중>에 다 준다면 어떻게 ‘참된 자’를 찾고, ‘의인’을 찾고,  ‘끝까지 변치 않는 자’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중간에 변한 자’를 <휴거>시킬 수 있으며, 어떻게 ‘중간에 변한 자’를 <천국 황금성>에 오게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처음>에는 조금만 주시고, <중간>에는 조금 더 주시고, <끝>에 가서 최고로 많이 다 주십니다.

끝까지 변치 않고 성삼위를 사랑하며 그 뜻대로 행한 자에게 그 행위대로 크게 많이 갚아 주십니다.

 

<2015년 12월 16일 정명석 목사의 수요말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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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석 총재 설교 – 삼위가 걱정하시지 않게 하려면 끝까지 해야 된다 끝까지 해야 의문도 오해도 풀리고 손해 간 것도 얻는다 / 시편 23편 5절

정명석 총재 목사 주일 설교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성령님께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걱정하시지 않게 해 드릴까요?”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도 성자도 나 성령도 걱정하지 않게 해 주려면, 누구나… 끝까지 해야 된다!”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 알파와 오메가, 처음부터 끝까지 ‘그 안’에 모든 계획이 질서 있게 다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끝’을 벗어나서 주지 않으십니다.  시작할 때 조금 주시고, 중간부터 조금 더 주시고, 끝나기 전에 점점 많이 주시다가,  끝장에 ‘최고의 것’을 주십니다.

다 하고 끝났을 때, 끝까지 다 겪고 나면 ‘각종 것’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이같이 섭리하십니다. 생각해 봐요. 직장에서도 일이 다 끝나야 ‘월급’을 줍니다. 일당을 받는 자라도 하루 일이 다 끝나야 ‘일당’을 줍니다. 건축을 할 때도 처음에는 ‘착수금’만 줍니다. 그러다 일이 다 끝나면 ‘일한 대가’를 줍니다. 그런데 어떤 일을 하든지 ‘각종 고난·역경·문제들’은 처음에도 있고, 과정 중에도 있고, 끝에도 있습니다. 그러나 끝에 고난·역경·문제들이 더 많습니다.

그런데 ‘의문과 오해’가 풀리고, ‘그동안 손해 간 것’을 얻고, ‘수고의 대가’를 받을 때는 끝났을 때입니다. 하나님도 그동안 수고한 것의 대가는 ‘끝’에 주십니다. 고로 끝까지 해야 됩니다.

구원도 ‘끝까지 행하며 견디는 자’가 받습니다. 처음에는 주를 믿고 따랐어도 끝까지 안 믿고 떠난다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경의 인물들도 끝까지 했기에 모든 의문과 오해를 풀고, 축복을 받고, 해같이 빛나게 됐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를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직접 왕이 되어 통치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게 ‘왕’을 달라고 부르짖으니, 하나님이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게 했습니다.
사울은 준비하지 않고 연단받지 않고 ‘왕위’에 올랐기에 하나님의 뜻대로 정치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로 인해 사울에게 기름을 부은 사무엘 선지자도 고통을 겪었고, 선지자 대접도 못 받았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행하여 다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하나님이 준비시킨 다윗을 택하게 되었고,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다윗’을 시기 질투하여 다윗을 죽이기 위해 온갖 추악한 짓을 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로부터 오는 괴로움과 고통’을 하나님 마음에 들게 잘하는 ‘다윗’을 보고 해소하며 다윗을 위해 끝까지 기도해 주었습니다. 결국 사울 왕은 전쟁에서 패하고, 자신도 자살하여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그 후 다윗이 ‘왕위’에 올라 하나님의 뜻대로 정치를 했고, 사무엘 선지자도 높임을 받게 됐습니다. 끝까지 하니 의문도 다 풀렸고, 사울로 인한 한도 다 풀렸고, 얻을 것도 얻게 되었습니다.

다윗 왕을 볼까요? 다윗 왕도 사울로부터 온갖 환난·핍박·고통을 받았고, 이웃 나라로부터 전쟁의 고통을 받았지만,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이 함께하시어 다 승리하여 나라를 평화롭게 다스리게 되었고, 왜 그동안 사울로부터 그렇게 고통을 받았는지 모든 의문도 풀게 되었고, 하늘과의 사이에 오해되는 문제도 다 풀렸고, 그동안 참고 견딘 것의 대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로 하나님께 고백했습니다. 시편 23편 5절에 그 고백이 나와 있지요?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원수의 목전이 바로 ‘끝’이 아닙니까? 끝까지 했더니, 끝에 가서 다 갚아 주셨습니다. 다윗이 끝까지 연단받고 행하여 받았으니, 사탄도 힐문하지 못합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셉은 ‘꿈’ 때문에 형제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애굽에까지 팔려가 ‘종살이’를 했습니다. 거기서 또 이성의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하게 됐습니다. 옥에 가서 옥에 갇힌 자들의 ‘꿈’을 풀어 주었고, 결국 ‘왕의 꿈’까지 풀어 주어 애굽의 심각한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이로 인해 ‘애굽의 총리대신’이 됐습니다.  어떤 환난과 어려움도 다 이기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사랑하며 끝까지 갔더니,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었고, 자신을 미워하여 애굽에 팔아넘겼던 형제들이 굴복했고, 하나님의 뜻도 풀고, 사연도 풀고, 소원도 성취하게 됐습니다.

선생도 그같았습니다. 시대 말씀을 불신하고 악평하는 자들이 사랑과 진리와 이성의 누명을 씌우고 억울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어이 모두를 사랑하게 하시어, 이곳에서도 ‘진리와 사랑’으로 변함없이 끝까지 행하여 결국 하나님의 창조 목적, 휴거 역사를 이루고 말았습니다!

끝까지 해야 합니다. 모두 끝까지 행해야 ‘개인의 의문, 시대의 의문’이 다 풀어집니다. 과정 중에는 ‘하나님의 은밀한 비밀’이라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끝까지 하여 다 완성하면, 그때는 ‘눈’에 보이게 되니 부인할 수 없습니다. 고로 행한 자가 보고 깨닫게 되고, 답이 보입니다. 그때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주가 원하시는 최종 목적지까지 끝까지 행하여 자신의 한을 풀고 얻을 것을 모두 얻으시는 주인공이 되시길 바랍니다.

 

<2015년 12월 13일 정명석 목사의 주일말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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